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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5.***.*** | 224일 20시간 54분 25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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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255.***.*** | 281일 20시간 15분 5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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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0 | 조회수 1,830 | 등록일 2015-03-27 21:4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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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태초

제목

태국의 기본이해
내용





태국 (Kingdom of Thailand)의 이해

동남아시아 중부 인도차이나반도 중앙에 있는 나라.

정식명칭은 타일랜드왕국, 옛 이름은 시암(Siam)이며 태국(泰國)이라고도 한다. 면적 51만 3115㎢, 인구 6060만 2000(1997). 서쪽에서 북쪽으로 미얀마, 북쪽에서 동쪽으로 라오스, 남동쪽에 캄보디아, 남쪽 끝은 말레이반도 중부에서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마주한 시암만에 잇닿아 있다. 수도는 방콕.

[자연·지지(地誌)]

인도차이나반도 북쪽에서 남쪽으로 나란히 뻗은 산맥에 지형적 특징이 있다. 그 지형적 특징을 바탕으로 북부산지, 수도 방콕이 있는 중앙평야, 북동부대지, 남부 말레이반도 등 4지역으로 나뉘어진다. 북부산지에는 남북방향의 높은 산맥이 줄지어 있으며, 타이 최고봉인 인타논산(2595m)이 있다. 산맥과 산맥 사이에 치앙마이·치앙라이·난·람팡 등 작은 분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그 분지와 분지 사이를 가로막는 높은 산지 사이의 하천 골짜기를 이용한 교통로가 예로부터 발달되었다.

분지는 주변 산지에서 흘러내리는 강물로 선상지를 이루며, 전통적 관개수리체계가 발달되어 타이에서 가장 생산성 높은 집약적 농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주로 벼농사를 하며 그루갈이로 깨·담배·마늘·콩 등도 재배한다. 북부 산간분지로부터 남쪽으로 흐르는 핑강·왕강·욤강·난강 등 4강이 합쳐져 타이에서 가장 큰 차오프라야강(메남강)이 되며 핑강에 푸미퐁댐, 난강에 실리키트댐이 건설되어 있다.

중부는 북부산지로부터 여러 강들이 차례로 합류하여 차오프라야강이 된 지역으로, 산지가 낮아지면서 평야로 이어진다. 이 지역에서는 동서쪽 산지가 좁아져 강물이 자주 범람하여 벼농사는 불안정하나 물 속에서도 견디는 벼가 경험적으로 재배되고 있다. 지류의 선상지에는 주로 벼농사가, 수리사정이 나쁜 곳에서는 목화 등 밭농사가 행해진다. 차오프라야강유역은 차이나트에서 동서로 널리 퍼진 대평야로 타이 중부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차오프라야델타이다.

제 2 차 세계대전 후 차오프라야델타 꼭대기의 차이나트에 농업용 대형댐이 건설되어 타이의 농업발전의 기반이 되었다. 차오프라야델타는 옛 델타와 신델타로 나뉜다. 옛 델타는 예로부터 육지로 만들어진 땅이며, 장대한 자연제방과 뒤에 습지가 있는 것이 특징으로 깊은 물에서도 잘 견디는 부도(浮滔)라는 벼 품종이 재배되고 있다.

해안에서 약 80㎞ 떨어진 그곳까지 조수의 영향이 나타난다. 신델타는 아유타야로부터 해안에 이르는 드넓은 지역이며 현재도 바다 쪽으로 확장되어가고 있다. 지형적 특징은 완전한 평탄지이며 해안 쪽 경사는 2/1000가 넘지 않으므로 곧바로 침수되어 좀체로 물이 빠지지 않는다. 19세기 말부터 물길이 가로세로로 파여져 벼농사 경작지를 확장시킴과 동시에 새로운 취락도 형성하였으며 오늘날 타일랜드 제 1 의 곡창지이다.

수도 방콕은 차오프라야강 양 연안에 있으며 그 근교에는 근대공장이 많이 들어섰다. 타이의 으뜸가는 공업지대이며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한 지방이다. 타이 전국을 오가는 교통망도 방콕을 기점으로 신델타를 가로질러 각지로 통한다. 타이 중부 동쪽끝은 페차분산맥과 동파야디옌산맥으로 갑자기 막힌다. 이 산맥들은 역사적으로 타이 중부와 타이 북동부를 갈라놓았다. 산맥 서쪽은 가파른 산지이며 무성한 삼림지역을 형성하고 동쪽은 완만한 기복이 되풀이되며 동쪽으로 기울어지는 큰 대지로 타이 전국토의 약 1/3을 차지한다.

대지 위의 물은 문강과 치강으로 모여 타이 북동부 동쪽 끝으로 흐르는 메콩강으로 들어가며 라오스와 국경을 이룬다. 기복있는 저지대는 논으로 만들어지고 고지대는 소림(疎林)으로 덮였지만 인구증가에 따라 소림지역도 논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벼농사 외에 밭농사와 축산도 이루어진다. 타이 중부 서쪽 끝은 다우나산맥으로 미얀마와 국경을 이룬다.

이 산맥은 남쪽으로 이어져 말레이반도와 연결되어 타이 남부를 형성한다. 말레이반도의 협착부(狹窄部) 크라지협에는 시암만과 안다만해를 직접 연결하는 크라운하를 만들 계획이며 이것은 남중국해와 인도양 사이 거리를 단축시키게 된다. 타이 남부는 대부분 산지이나 시암만 쪽 동편에는 해안에 잇닿은 소규모 해안평야가 몇 곳에 형성되어 자급자족할 수 있는 벼농사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서쪽은 산지가 곧바로 바다로 떨어져 거의 해안평야가 생기지 않았다. 타이 남부의 전통적 산물은 주석이나 근대에 고무가 더해졌으며 어업도 중요하다.

타이의 기후는 국토 대부분이 열대에 속하고 동남아시아에서 부는 계절풍 몬순의 영향을 받는다. 연간 한낮의 최고기온이 20℃가 넘고 연교차는 적으나 일교차가 꽤 커서 아침은 서늘하다. 5월부터 10월까지 해양으로부터의 몬순 영향으로 우기를 형성, 그 해의 논농사가 시작된다. 11월부터 2월까지는 대륙으로부터 오는 북동몬순으로 대기가 건조되어 서늘한 건조기를 형성하며 이때 벼농사를 마감한다.

논농사뿐 아니라 축제며 종교행사 등도 몬순에 의한 계절변화와 떼놓을 수 없다. 논농사를 시작하기 전인 4월에 타이에서 가장 큰 축제가 송클라에서 개최된다. 농경일이 일단락되어 추수를 기다리는 7월부터 10월까지는 승려가 사원에서 수행하는 우안거(雨安居)가 행해진다. 젊은 남녀가 일시적으로 출가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농작물을 거두어들인 뒤 대부분의 사원에서는 행사가 있고 사람들은 지방굿·권투·영화 등 오락을 즐긴다. 이같이 지형·기후 등 자연조건에 따른 사람들의 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다.

[역사]

타이인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기원전 중국 강남 땅에 살던 애뢰(哀牢)가 그들로 여겨지며, 뒤이어 7~9세기에 윈난[雲南]의 다리[大理]에 세워졌던 남소(南詔)는 타이인 국가였다. 그들은 곧 인도차이나반도 각지에 남북방향 산맥의 강골짜기를 따라 논농사를 지으며 이동하였다. 13세기에는 치앙사엔·치앙마이·루앙프라방·아홈·수코타이 등 타이인의 여러 왕국이 세워졌다.

그 가운데 크메르를 부수고 세워진 수코타이왕조는 3대째인 라마캄헹왕 때 최성기를 맞았으며 세력이 말레이반도까지 이르렀다. 이 왕조는 크메르문자로부터 타이문자를 만들었으며 스리랑카로부터 상좌부불교(소승불교)를 들여오는 등 선진문명을 적극적으로 흡수하였다. 같은 시기 치앙마이에서 라나타이왕국이 일어나 만라이왕이 위세를 떨쳤는데, 그 통치는 만라이법전에 의해 오늘날에 전해진다.

1350년 타이 중부 아유타야에 아유타야왕조가 생겼으며 곧 북쪽 수코타이왕조를 지배하였고 남쪽으로는 멀리 말라카까지 세력을 뻗쳤다. 동쪽으로는 앙코르를 공격해 크메르를 위협하였고, 서쪽에서는 미얀마와 대립하였다. 크메르부터 문명을 받아들여 세련된 궁정의례와 정비된 행정제도를 만들었으며 왕족·귀족·일반서민의 사회적 지위를 논넓이로 표시하는 사크티나제도를 확립하였다.

1569년 미얀마와의 전쟁에서 아유타야가 함락되었고 1584년 중흥의 시조 나레수앤대왕이 다시 미얀마군을 쳐부수고 타이의 독립을 되찾았다. 아유타야왕조시대에도 해외교역이 성하였다. 1767년 미얀마와의 싸움으로 다시 멸망하였으나 중국계 장군 타크신(중국명 鄭昭)이 곧바로 군대를 정비해 미얀마군을 무찌르고 타이의 독립을 회복하였다.

1768년 방콕 건너편의 대방콕 일부에 속하는 톤부리를 도읍지로 정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라 라오스·캄보디아까지 세력을 넓혔으며 그의 뒤를 이어 부장 프라야 차크리(라마 1세)가 왕위에 올라 도읍을 방콕으로 옮겼다. 이것이 현재 방콕왕조의 시작이며 라마 1세는 타이 세력을 크게 확장해 말레이반도의 켈란탄, 미얀마의 타보이까지 지배하였으며 아유타야왕조의 관행부활에 힘쓰고 옛 관례를 재구성하는 법전공포와 불교재흥에 힘썼다.

19세기 유럽 열강의 진출이 극심, 미얀마는 영국식민지가 되었다. 유럽의 학문과 기술도입에 적극적이던 라마 4세의 뒤를 이어 라마 5세 출라롱콘대왕은 쇄국제도를 풀고 개국하여 1855년 영국과 통상우호조약을 맺었다. 부역제도와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사법·교육제도를 근대화하는 한편 철도·통신사업도 추진하였으며 사회의 모든 방면을 개혁하였다.

이러한 개혁노력에도 불구 영국에게는 말레이반도의 케더·페를리스·테렝가누·켈란탄을, 프랑스에게는 메콩강 왼쪽 연안의 라오스를 떼어주어야 했다. 1929년 시작된 세계불황은 타이의 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었으며 1932년 무혈쿠데타, 즉 입헌혁명이 일어나 전제군주제도로부터 입헌군주제도로 바뀌어 헌법이 제정되었다.

그 뒤 정치권력을 둘러싸고 문관파와 무관파가 싸워 한때는 문관파 P.프리디가 권력을 잡았으나 곧 무관파 루앙 피분 송크람이 정권을 쥐었다. 제 2 차세계대전중에는 일본과 동맹관계를 맺어 피분정권이 이어졌다. 한편 프리디는 지하에서 자유타이운동을 지도 하기도 하였다.

[정치·외교]

피분정권 이후에 군부정권이 계속되었으며 1957년 사리트 타나라트가 쿠데타로 권력을 잡아 강력한 지도력으로 치안을 안정시켰다. 1970년대에 들어와 민주화의 요구와 1973년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독재정치에 반대해 사리트정권을 이어받은 타놈정권을 타도하였다. 정권은 문관파로 넘어가고 총선거가 실시되었으나 정치정세는 불안정하였다. 베트남전쟁의 행방을 둘러싸고 국제정세는 유동적이었으며, 우익의 테러리스트행위가 잇따라 일어났다.

1976년 10월 타마사트대학 구내에서 경찰대와 우익세력이 무력으로 학생운동을 탄압한<피의 수요일> 사건 뒤 바로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다시 군부가 정치권력을 잡았다. 1970년대에는 신흥자본가층과 중간층을 대표하는 정당이 성장하였고, 보수파나 우익정당도 강대한 세력을 지니고 있었으나 학생운동과 지하공산당의 세력이 약해졌다.

이러한 정치세력의 항쟁을 특징짓는 것 중 하나가 파벌이었다. 파벌형성과 쇠퇴가 곧바로 정치과정변동과 연결되었고, 파벌내에서는 우두머리와 부하관계로 상하질서가 이루어져 그들은 이해관계로 밀접하게 결부되었다. 타이는 입헌군주국이며 국왕이 원수이다. 1932년 입헌혁명으로 전제군주제도가 폐지되었으나, 국왕에 대한 국민의 신망은 매우 두터우며 초월적인 카리스마 권위를 갖는다.

또한 국가를 통합하는 형식적 상징 이상으로 현실 정치에 큰 영향력을 지녔다. 의회는 국왕이 임명하는 상원과 선거로 선출되는 하원으로 구성된다. 상원은 임기 6년, 2년마다 1/3을 개임한다. 하원은 임기 4년이다. 수상은 국왕이 임명하며 수상과 각료는 하원의원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1988년 7월 총선에서 차티차이 춘하반 타이국민당 당수가 사회행동당·민주당·타이시민당·민주당을 포함, 6개 정당으로 연정을 구성하여 총리에 취임하였다. 1991년 군비난 각료의 중용에 불만을 품은 쿠데타가 발생하여 과도정부가 수립되었으며, 이에 군사혁명위원회의 해체와 총선실시를 요구하는 시위가 있었으나 1992년 3월 총선실시 후 친군부 5개 연합정당이 쿠데타주동자 수친다 크라프라윤 장군을 총리로 임명하였다.

학생·시민의 대규모적 시위 전개와 푸미폰 아둘랴데이트국왕의 중재를 거쳐 92년 실시된 총선에서는 반군부 4개 야당이 압승, 추안 리크파이가 총리로 취임하였다. 외교는 반공을 기본노선으로 하며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구열강의 식민통치를 받지않고 독립을 유지하였다. 제 2 차세계대전 후 미국과 적극적으로 친밀관계를 맺어 많은 경제원조를 받았다.

미국의 동남아시아정책에 협력하여 1954년 설립한 동남아시아조약기구(SEATO)본부를 방콕에 두었다. 베트남전쟁에서도 적극적으로 미국을 도와 미국공군기지도 두게 되었다. 한편 공산진영과의 관계유지도 게을리하지 않아 옛 소련과 1947년부터 국교를 맺었으며 중국과는 1975년, 베트남과는 76년에 국교를 맺었다.

아시아 여러 나라와 외교를 수립하는 데 힘을 기울였으며 특히 1967년 결성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에 가입해 베트남전쟁 후의 캄보디아문제·지역내 경제협력 등 많은 공통문제로 여러 나라 수뇌의 상호방문도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1990년 6월 동경 캄보디아평화회담에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경제·산업]

제 2 차세계대전 전 타이경제의 근본성격은 단일작물생산이었다. 쌀·주석·고무·티크재목을 수출하고 근대공업제품, 특히 의류품을 수입하였다. 공업생산발전은 매우 한정되어 정미업이 가장 큰 산업이었으며 국가재정도 영국인 재정고문 지도아래 있었고 통화는 영국 파운드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후에도 한동안은 경제기본성격에 변화가 없었으나 민족주의가 드높아지고, 미국경제원조를 바탕으로 공업발전이 계획되어 많은 정부기업이 설립되었다.

그러나 그 정부기업은 비능률적이어서 대부분이 실패로 돌아갔다. 1960년대 사리트정권아래서 정책권한이 생겨 정부기업으로부터 민간자본주도쪽으로 바뀌었다. 투자장려법으로 외국자본을 유치하여 수입에 의존하던 공업제품을 국내에서 생산하는 수입대체산업 진흥이 추진, 섬유·자동차·이륜차·전기제품 등 생산이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다. 한편 식품가공·석유 등 중소기업 생산도 증가하였다. 이러한 공업화를 이룬 요인으로서 외국자본 투입과 베트남의 특별수요 및 국내 농업약진을 들 수 있다.

1970년대에 타이 농업생산이 눈부시게 확대되어 전통적으로 타이농업의 근본인 쌀생산의 경작넓이나 관개범위가 확장되었고, 품종개량으로 수확이 증가되었다. 그리고 옥수수·매니오크 생산도 급속히 늘어 전쟁 전부터 고무와 함께 농업다각화의 중요한 일부를 차지하였다. 공업생산의 비약적 확대와 농업생산의 착실한 증가로 70년대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7%에 가까운 발전을 가져왔다. 그러나 급속한 경제발전은 소득격차, 자연환경파괴, 도시생활의 근대화의 미발달 등의 많은 사회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1970년대 무역은 수출과 함께 급증되었다. 주요 수출품은 쌀·야채·천연고무·어패류·옥수수 등 제 1 차생산품이지만, 70년대에 성장한 의류·석유품·기계류 등 공업제품의 비중이 높아졌다. 주요 수출상대국은 미국·네덜란드·싱가포르·홍콩·일본 등이다. 수입도 크게 달라져 소비재수입이 크게 줄고, 공업생산용 원재료·자본재·원유 등이 두드러지게 늘었다.

주수입상대국은 미국·사우디아라비아·싱가포르·말레이지아·일본 등이다. 공업화에 필요한 원재료와 자본재수입이 급증해 농산물 수출액을 넘기 때문에 무역수지는 언제나 적자이다. 특히 대일 무역적자가 커져 해마다 무역마찰문제를 불러일으켰다.

무역수지 적자는 관광수입과 외국으로부터의 송금과 민간투자·정부차관 등으로 메워진다. 특히 관광수입 증대와 아랍산유국으로부터 보내져오는 노동임금이 많다. 교통은 타이국유철도공사가 운영하는 총길이 3765㎞의 철도 외에 간선도로망이 완비되어 있다. 차오프라야강을 중심으로 수상운송도 발달되었다. 항공은 모두 국영으로 타이항공의 국내선과 타이국제공항의 국제선이 있다.

[사회·문화]

타이의 민족구성은 복잡하나 인구의 절반 이상이 타이민족이다. 타이민족의 전통적 기본성격은 논농사·상좌부불교·타이어의 3가지로 대표된다. 타이 북부·북동부의 라오어는 지방방언이다. 상좌부불교는 사실상의 국교이며 거의 모든 타이민족은 경건한 불교신자이다. 남자가 20살이면 출가하는 관행이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도시·농촌에도 사원이 곳곳에 있고, 한달에 3번 있는 부처의 날, 연중행사, 축제 등에 참배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그러나 승려의 수행은 엄격하여 삭발하고 황의를 걸치며 227계율을 지키며 산다. 생활은 속인의 시주에 의존한다. 엄하게 계율을 지킨 승려는 이 세상의 성스러운 존재이며, 불타의 대리가 된다. 사람들은 승려에게 시주하여 공덕을 쌓으며 공덕을 많이 쌓은 사람은 내세에 행복해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불교신앙과 함께 영혼숭배도 뿌리깊게 남아 있어 자연과 인간 사이에 관계되는 질서감각을 사람들에게 길러주어 자연뿐 아니라 인간 사이의 관계에도 밀착되어 있으며 불교신앙과 영혼숭배가 습합(習合)된 신앙형태를 보이고 있다.

타이사회 최대의 소수민족은 인구 약 400만이 넘는 중국계통 화교이다. 이들의 역사는 오래되었으며 수많은 중국계통 타이인의 존재는 타이민족주의를 자극해 본토인과의 사이에 심각한 대립관계를 형성한 적도 있었으나 중국인과 타이인 사이는 연속적으로 이어져 명확한 단절은 없다. 400만이 넘는 중국계통 타이인 중에서 중국 국적을 가진 이는 30만 정도이다. 법률적으로도 국적은 출생지주의이므로 타이에서 태어난 사람은 자동적으로 타이국적을 가지게 된다.

타이사회에서 중국계 타이인의 역할은 크며, 특히 경제활동에서 압도적이다. 세계대전 전에도 금융·상업·제조업 등을 독점하였으며 1970년대 공업발전을 주도하였다. 자본가계급뿐 아니라 직인·노동자도 대부분 중국계 타이인이었으며 그들은 출신지별로 조직을 만들고 각각 회관을 건설해 상호부조를 실현하고 있다. 출신지는 대부분 중국 남부이며 특히 차오저우[潮州] 출신이 과반수를 차지한다. 말레이시아인도 소수민족에 속한다. 주로 타이 남부에 살며, 특히 말레이시아 국경에 가까운 남부 4주에는 인구의 과반수가 살고 있다.

말레이시아인은 이슬람교를 믿으므로 일반 타이사회와는 뚜렷이 다른 문화를 형성한다. 세계대전 전부터 독립 또는 자립을 찾으려는 운동이 꾸준히 펼쳐져왔다. 같은 소수민족이지만 크메르인은 캄푸치아 국경에 가까운 타이 북동부 3주에 많이 살고 있다. 타이사회에 동화되고 있으나 현재에도 크메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몬인도 소수민족이나 현재 거의 타이사회에 동화되어 몬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밖에 북부산지에는 메오·야오·카렌·리소·무소·이코·라와 등 많은 산지민족이 살고 있다. 교육은 1978년부터 6·3·3제를 실시하였다. 의무교육은 국민학교 6년까지이며 문맹률은 14.5%이다. 출랄롱콘대학, 타마사르대학 등 14개 국립대학이 있다.

[한국과의 관계]

1949년 10월 21일 대한민국을 승인, 1950년 11월 1일 6·25에 참전하였다. 1958년 10월 1일 공관급 외교관계가 수립되었으며 북한과는 1975년 5월 8일 수교하였다. 두 나라는 무역협정(1961.9)·무역전시품면세통관협정(1963.5)·항공협정(1967.7)·관용여권사증 및 수수료면제협정(1967.10)·이중과세회피 및 탈세방지협정(1977.10)·운수소득면세협정(1981.1)·일반여권사증면제협정(1981.11)·과학기술협력협정(1984.4) 등을 맺고 있다.

통상면에서는 1992년 대한수출 6억 93만달러(사료·천연고무·당류·컴퓨터부품), 대한수입 13억 8967만달러(철강·비료·섬유류·엔진부품)이다. 타이에는 대한무역진흥공사·외환은행 외에 대우·삼성·현대 등 13개 업체가 진출하였고, 교민 1098명에 427명이 체류(88.6현재)하고 있다. 타이 정부는 농촌개발을 위해 한국의 새마을운동에 관민 1200명을 시찰시켰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 선수단 32명이 참가하였다. 북한과는 무역협정(78.12)·체신우편협정(82.2)을 체결하였으며 통상면에서는 1986년 대북한수출 840만달러(천연고무·옥수수·타피오카), 대북한수입 1360만달러(비료·섬유·철강)를 보이고 있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출처 : [기타] http://chang256.new21.net/board/board.php?db=201&no=2936&page=1&sm=&key=??&mod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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